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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여성

여자 셀프 반삭 후기

2020. 9. 8.

나는 학생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줄곧 어느 정도 긴 머리를 유지해왔었다. 그게 잘 어울리다고 생각했고, 묶으면 단발보다 편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대학생 때는 안 해본 염색 컬러가 없었다. 학생 때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생각에 머리를 가만두지 않았다.

스티커 출처- 오징어파쇄기 블로그 다운

생머리부터 긴 웨이브 머리까지, 다 해보다가 한 번쯤 단발을 하기도 했는데, 순전히 상한 머리를 잘라낸 것이지 좋아서 한 것이 아니었다. 다시 빨리 기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기르다가 2번 정도 원인모를 원형탈모가 오기도 했었는데 치료를 받으면서도 파마나 염색을 해도 되냐고 의사 선생님한테 물어보기도 했다.

점점 짧아진 기장

머리에 대한 집착은 페미니즘을 접하고 화장을 줄이기 시작할 때도 계속되었다. 물론 긴 머리에 대한 불편함과 에너지 낭비에 대한 인식이 크게 생기기 시작해서, 줄곧 1년 동안은 숏컷부터 시작해서 어깨 위 정도의 기장을 유지했다.

아래쪽만 미는 언더컷이라고 나름 과감한 스타일도 해봤다. 그래도 스타일은 포기가 안돼서 매직, 허쉬 컷, 염색을 반복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올해 투톤 염색이 유행이 될 즈음, 나도 부분 탈색이 하고 싶어 졌다. 생 탈색은 처음이지만 또 근자감으로 언니의 도움과 셀프로 진행했다. 그 뒤로 2번 이상의 염색을 거친 뒤 비로소 완성되었다.  돈과 시간이 매우 많이 들었는데도 놓질 못하고 맘에 들 때까지 거울 앞에서 계속했다. 화상을 위험을 감수하고서도 탈색을 했다.

나의 버킷리스트 중에 머리 삭발해보기가 항상 있었다. 하지만 가족들의 만류 나조차도 용기가 없었기에 항상 도전해보겠다는 마음도 없었다. 해도 나중에 나이 들어서 시골이나 자연에서 살 때 해봐야지. 이런 마음이었다. 이렇게 스트레스받는데 왜 머리를 자르지 못하고 있지? 반삭은 왜 못하는 건데? 나중 말고 지금 당장

그렇게 마음을 먹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리깡을 들고 거울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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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로 한 반삭은 조금 난항을 겪었다. 일단 기장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가위로 자른 후 그대로 밀었는데 잘 안 밀렸다.

참고로 올린다. 내돈내산. 방수돼서 괜찮은듯.

계속 헛도는 느낌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언니를 불렀다. 사실 나 혼자 하고 싶었는데, 그 이유는 반삭인 모습이 너무 충격적일까 봐... 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반삭을 하면 내 얼굴에 큰 변화가 있을 것만 같았다.

솔직히 무서웠다.

언니의 도움으로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기장은 8mm 정도였나? 12mm였나 아무튼 처음에 길게 했다가, 어차피 금방 자라니깐 더 짧은 클립을 끼우고 진행했다.

다 끝난 후 거울을 봤다. 생각보다 그냥 그랬다. 큰 감정의 변화는 없었다. 그냥 내 얼굴이었다. 나였다. 오히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머리털이 없으니 본연의 이목구비가 잘 보인다는 느낌.

샤워를 했는데, 와... 감동이었다. 진짜 너무 너무 편하잖아?! 머리를 감는다는 의미가, 그냥 세수하는 정도의 간편함?
세수하다가 살짝 위로 더 해주면 되는 정도? 신세계였고, 물기도 수건으로 닦으니 1초 만에 말랐다. 머리가 금방 마르니 침대에도 축축함을 느끼지 않고 바로 뛰어들 수 있었다. 기존과는 전혀 다른 느낌, 이십몇 년 만에 느껴보는 차원이 다른 뽀송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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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족들. 가족들은 내가 처음에 농담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니 미쳤다는 반응이었다. 그렇게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반기는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다. 특히 엄마는 유튜브가 사람 망친다는 살짝 서러운 말도 했다.

삭발을 하고 보여주니, 다들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점점 익숙해져서 별 말 안 했다. 아빠도 멋있다고 잘했다고 했다. 그래도 스님 같다고 많이 놀리긴 했다ㅋㅋㅋㅋㅋ

친구들. 가족보다 친구들에게 말하기가 참 힘들었다. 일단 만나기 전 놀랄까 봐 미리 카톡으로 알려줬다. 이유에 대해서 당연히 물어보는데, 여기서 나의 비겁함이 드러났다. 탈색해서 머리가 복구 불가라 다신 매직 못하니깐 그냥 밀었다라고 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것도 맞지만 여성에게 당연시되는 긴 머리에서 벗어나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멈추었다. 아직 친구들과는 이런 페미니즘 이야기가 익숙지 않은 주제이기 때문이다. 또 무조건적인 반감을 갖는 친구도 있었기 때문에 입을 닫아 버렸다

반삭을 한 후 머리는 쑥쑥 자랄 거란 예상과는 달리 천천히 자라고 있다. 곱슬이 심하고 머릿 털이 뻣뻣하다 보니 점점 위로 향해 자라는 느낌이다.

하늘로 쭉쭉 뻗는 내 머리...

지금은 스포츠머리 느낌이다. 머리를 더 밀어서 계속 짧게 유지할 수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기르는 중이다. 반삭이 당당하지 않거나 부끄러운 게 전혀 아닌데 왠지 모르게 항상 모자를 쓰고 다녔다. 아예 삭발 수준의 짧은 기장이 아닌 이상, 애매하게 자란 내 곱슬머리는 날이 갈수록 하늘로 솟았기 때문이다. 옷도 매치하기가 힘들다

앞으로도 과도하게 시간, 돈, 에너지를 낭비하는 스타일은 지양할 것이다. 매직은 앞으로도 할 것 같다. 반삭을 하면서 느낀 점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아무것도 아닌데 뭘 겁냈던 거지? 이거다

난 앞으로 다시 자르고 싶다면 자르고 조금 길어서 다른 스타일을 해보고 싶으면 그렇게 할 것이다. 획일화에서 벗어나 나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여성분들도 꼭 느껴봤으면 좋겠다. 끝으로 페미니즘, 탈코르셋 등등에 있어서 각자의 사정과 속도가 모두 다르다고 생각한다. 비난과 검열로 상처 주지 않았으면 한다. 우린 같은 목표로 향해 가는 사람들이니깐 서로 존중하고 응원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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